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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원형으로 돌아가자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0/02/26 [15:44]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목회자나 신앙지도자(장로, 집사)들이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명언이 있다. “이적은 철(鐵), 신학은 동(銅), 설교는 은(銀), 사랑은 금(金)”이란 말이다.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순서다. 설교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목회를 해선 안 된다. 그 설교에 일치는 못돼도 근접한 실제 삶(생활신앙)이 보장되어야 목회가 힘을 발휘한다.

 

또 다른 말이 있다. 미국 상원의 채플 인도자와 상원 의장을 지낸 리챠드 핼버슨(Richard C.Halverson)은 “교회는 처음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람들의 교제 모임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하여 철학(哲學)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 제도(制度)가 되었다. 그 다음 유럽으로 넘어가선 문화(文化)가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기업(企業)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교회가 한국으로 넘어와선 ‘재벌’(財閥)이 되었고 목회자에게는 ‘권력’(權力)이 되었다고 덧붙인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들 특히 대형교회들이 성경적 교회에서 상당히 변질되었음을 지적한 말이다. 종교(교회)개혁 500주년(2017년) 때 ‘교회는 교회 되게 성도는 성도 되게’ 하자는 주장(표어)들이 있었지만 500주년 기념의 해가 지나고 나니 다시 옛 모습으로 회귀 되어 버렸다.

 

어느 대형교회 원로 목사가 새벽기도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자. 아파트에서 출발해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중간 중간에 무전기를 든 평신도(집사?)들이 늘어서서 마치 대통령이 어떤 행사장에 도착하는 것처럼 중계하면서 경호하는 것을 보고 정위치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왕 같은 대우를 누리며 삼엄한 경호 속에 살 수 있는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며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옆에서 군인들은 예수님이 입었던 겉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뽑기를 하고 있던 것(마 27:35)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지만(눅 14:27/눅 9:23) 예수님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타고가는 모양새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순수한 목회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 면(面) 단위 이하에 있는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거의 미자립 교회들이다. 교인 수가 몇십 명 이하이고 교회 재정은 목회자 한 사람의 생활비를 담당하기에도 벅차다. 정말 배고픈 목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시의 대형교회는 넘쳐서 문제고, 시골 소형교회는 가난해서 문제다. 개교회주의로 가니까 내 교회만 챙기지 다른 교회는 상관할 바 아니다.

 

이상조 목사의 “목회에 대한 꿈”을 들어보자.

 

“쓰레기처럼, 거리에 굴러다니는 방황하는 영혼들을 봅니다. 그들은 우리의 책임입니다/거룩한 영혼인데, 마치 이방인처럼 버려지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처럼 외면되고 있습니다/그들에게 관심을 주셨고, 그들을 위하여 이곳에 목회를 열어주셨습니다/마음이 열린 한 영혼만 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바나바에게는 마가와 같은 동역자가 필요합니다/언어는 달라도,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물질인 것 같지만 돈보다 영원한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주님! 나에게 주신 가슴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 주소서/나의 꿈이 주님의 꿈인 것은, 우리 주님이 이 종의 가슴에서 숨쉬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의 것인 것을 이 종의 사역을 통하여 증거하게 하소서/이 종을 불러주신 주님! 언어가 다른 그들을 부르시는 주님! 우리 모두가 우리 주님의 거룩한 가족인 것을 알게 하소서/사랑하는 주님! 위대하신 당신! 영원하신 사랑으로 당신의 뜻을 세워 갑니다”.

 

또한 정연희 권사는 “나는 그분을 은전 30량에 판 유다와, 황당하게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와 엠마오에서 만나 함께 걸어가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제자와, 주님의 옆구리를 찔러 보고 확인해봐야 믿겠다는 도마의 DNA를 모두 갖고있는 존재”가 아닌가 되짚어보고 있다.

 

주님은 교리(敎理)가 아니다. 더욱이 종교도 아니다. 주님은 성전건물이 아니다. 모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무엇을 내어놓으라고 채근하지 않았다.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생명과 영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함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슬금슬금 엉뚱한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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